“GPU에는 엔비디아가 있고,
메모리에는 SK하이닉스가 있다.”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열린 GTC 2025 현장은 AI와 반도체 기술을 둘러싼 최신 흐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자신들의 신기술을 전시하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유독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긴 부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전시장이었죠.
부스 앞에 멈춰 선 한 미국 반도체 기업 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HBM 관련 기사에서 항상 SK하이닉스만 보였는데, 직접 보니 왜 그런지 알겠네요.”
이 말은 단순한 감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가 놀란 건 바로 SK하이닉스가 이번에 공개한 'HBM4 12단 적층' 기술이었습니다.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은 메모리 칩 안에 12단으로 메모리를 쌓았다는 건, 그 자체로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많이 쌓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 HBM4 12단의 기술력
이번에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HBM4 12단 제품은 그동안의 HBM 시리즈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자랑합니다.
특히 데이터 전송 속도와 용량에서 괄목할 만한 진보를 이뤘습니다.
우선, 이 제품은 1초에 2TB 이상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빠른 속도냐면, 풀HD 영화 400편 이상(1편 약 5GB 기준)을 1초 만에 전송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기존 세대인 HBM3E보다도 약 60% 이상 빨라졌고, 이는 AI 훈련 속도나 대규모 데이터 처리 환경에서 극적인 성능 향상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제품은 36GB 용량을 단 하나의 칩으로 구현했습니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큰 용량을 하나의 작은 공간에 담아낼 수 있게 된 것이죠.
이처럼 속도와 용량을 동시에 끌어올렸다는 건, SK하이닉스가 단순히 메모리를 더 많이 만든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기술에 도달했다는 뜻입니다.
기술의 핵심은 ‘MR-MUF 공정’
이 엄청난 성능을 가능하게 만든 배경에는 SK하이닉스만의 독보적인 공정 기술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바로 MR-MUF(Molded Underfill) 공정입니다.
이 공정 방식은, 칩과 칩 사이에 액체형 보호재를 빈틈없이 주입하고 굳히는 기술입니다.
일반적으로 경쟁사들이 사용하는 '필름' 방식은 칩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고체 형태의 접착재를 붙이는 식인데,
이 경우 열 방출이 어렵고, 구조적으로도 약점이 생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MR-MUF는 액체 보호재가 빈틈 없이 칩 사이를 채워주기 때문에,
열을 빠르게 밖으로 내보낼 수 있고, 구조적으로도 더 견고하게 쌓을 수 있습니다.
또한, 추가적인 필름 작업을 생략할 수 있어 생산 속도는 더 빠르고, 불량률도 낮아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모든 장점 덕분에 SK하이닉스는 단순히 ‘먼저 만든 제품’이 아니라
품질, 생산성, 기술 완성도 모든 면에서 앞선 제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SK하이닉스의 HBM 개발은 AI 이전부터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HBM을 ‘AI용 메모리’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이 기술의 시작은 AI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훨씬 전인 2010년대 초반입니다.
당시 SK하이닉스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 AMD와 고성능 메모리 기술을 함께 고민하며
‘미래의 컴퓨팅 시스템에는 지금보다 훨씬 빠르고 용량 큰 메모리가 필요할 것이다’라는 문제의식에서 HBM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AI 수요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이 기술이 이렇게까지 주목받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가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현실에 주목했고,
지속적으로 기술을 연구하고 사업화를 준비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세계 최초로 1세대 HBM을 상용화했으며,
이후 HBM2, HBM3, HBM3E, 그리고 이번 HBM4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기술 선도 위치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SK그룹의 과감한 투자, 지금의 HBM을 만들다
SK하이닉스의 이러한 기술력은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과거, 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되기 전만 해도 생존 자체가 우선 과제였고,
미래 기술 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특히 2012년, 메모리 업황이 좋지 않아 대부분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 예산을 줄이던 시기,
SK는 오히려 HBM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차세대 기술에 베팅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AI 수요는 존재하지 않았고, 언제 시장이 열릴지도 예측할 수 없었지만
SK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과 가능성에 투자한 것이었고,
그 과감한 선택은 지금 HBM4라는 기술로 돌아온 셈입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 단지 기술 때문만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지금 단지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가 아닙니다.
생산, 품질, 공급망, 미래 전략까지 통합된 ‘AI 메모리 리더’로 변신 중입니다.
한국에서는 용인, 이천, 청주를 중심으로 AI 메모리 생산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고,
미국 인디애나주와는 첨단 패키징과 후공정 관련 협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고객사에 더욱 가까운 생산 기반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120조 원 이상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으며,
향후 AI 시대에 필요한 고성능 메모리를 적시에 공급할 수 있는 중심축이 될 전망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
AI는 분명 앞으로도 더 커질 산업이고,
GPU가 중요한 건 맞지만 그만큼 HBM 메모리는 AI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중 핵심입니다.
이 시장에서, 단순한 ‘제품 경쟁’이 아니라
누가 가장 먼저, 가장 안정적으로, 가장 강력한 메모리를 공급하느냐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그 전선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기업이 바로 SK하이닉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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